백승주 칼럼_제주의 주체는 행정 아니라 도민이다

2018. 1. 3. 16:48세상 이야기/백승주의 제주이야기

제주매일, 2017.2.23 칼럼입니다.

지난해 말 국회 예산정책처는 10년 가까이 장기화되고 있는 강정해군기지 사업을 둘러싼 갈등의 원인으로 초기 사업추진 과정에서 정보공개 부족 및 절차적 정당성 확보노력이 부족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그러면서 당사자 간 쟁점, 즉 환경가치 문제·안보가치 문제 등에 대한 정보공유 및 소통부재, 안보가치를 최우선 한 정부의 사업추진 강행 및 이의 반대 활동에 대한 공권력 투입 등이 강정 갈등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또한 중앙정부나 제주특별자치도의 갈등조정 시도는 있었으나 이해관계의 차이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국회도 갈등의 본질적 문제를 다루는데 충분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실 강정문제의 갈등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업초기 단계에서 정부의 국가주의적 사고에 편승하여 진지하고도 고뇌에 찬 결단을 방기(放棄)한 채 시간에 쫓기듯 서둘렀다. 이에 제주도정은 입지 선정에 대한 정책 판단의 오류, 절차이행에 따른 하자(瑕疵)의 무시 및 강행, 견제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하지 못한 도의회의 안이한 대처 등이 뒤범벅이 됨으로써 더욱 꼬이고 복잡해져졌다고 본다.

또한 이 원초적 오류들이 ‘자양분’이 되어 강정문제는 키워졌고 오늘에 이르기 까지 아직 원만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 당시를 떠올려 보면 아쉬운 점들이 없지 않다.

첫째, 만약에 사업초기에 도정이 중앙정부의 압력을 무릅쓰고 심사숙고 하여 이해당사자들과 소통을 강화하면서 입지 선정에 최선을 다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지금의 강정문제는 크게 드러나 있지 않거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을 것이다.

둘째, 정부나 제주도가 이런 오류를 받아들어 도민과의 대화를 통해 보다 심사숙고하는 자세를 견지했으면 어떠했을까? 아니면 정부나 제주도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제3자를 통해 소통하면서 갈등을 조정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에서 진득한 논의를 통해 많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면서 상생의 분위기가 조성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주개발과정에서 정보공개의 부족 및 절차적 정당성 확보노력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예래휴양형주거단지 개발사업, 신화역사공원 조성사업 등을 통해서도 이런 노력이 더 후퇴되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즉, 행정은 강정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이해당사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면서 그들의 권익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특정 개발사업을 추진하려는 도민들을 위하는 노력에 매우 인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오라관광단지 개발 문제 또한 그 전개 과정에서 소통의 부재가 확인됐고, 절차적 정당성 확보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제2공항 추진과정에서도 그런 단초들이 드러나 있다.

국토개발에 있어 절차적 정당성 문제는 덜 민주화되고 법치주의가 경우에 따라 크게 훼손됐던 개발독제 체제에서 경제개발과 산업화를 최우선의 국가 목표나 가치로 우선하면서 종종 논란을 불러왔던 의제였다. 국민 각 개인의 권익 증진이나 가치 실현을 위해 법령에 보장된 절차의 이행을 위한 시간을 ‘낭비’라는 시각으로 배격했었다. 자체 계획된 기간 내에 경제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 등과 같은 높은 공공성 실현을 개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밀어붙이는 것을 당연시 했다.
최근 도민의 눈을 휘둥그러지게 했던 것은 국정농단사태에 즈음하여 여당이 제기한 ‘탄핵심판’과 ‘특검활동’의 법적·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됐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민주·법치국가에서 법적 절차에 관한 한, 어떤 경우이든 절차적 정당성은 가치 판단에 따라 존중돼야 한다고 본다면 이 주장 또한 일면 설득력이 있다.

그간 개발행정은 소통부재 속에서 국가 또는 지방정부가 추구하는 가치만이 반드시 우선돼야 한다는 행정일방주의를 내세워 개발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인본주의의 발로에서 소통부재와 일방주의는 개발과정에서 배격되어야 마땅하다.

제주개발은 도민이 추구하는 가치를 존중하고 그들의 이익을 우선 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주체는 행정이 아니라 도민이다.

제주매일 2017.2.23

백승주 박사/ 서귀포시 대정읍 출신으로 재경 대정포럼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고려대 지방자치법학연구회장과 C&C국토개발행정연구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