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2019. 8. 22. 13:16사진 이야기/Landscape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 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뜷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뜷어진 그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 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를 보고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 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게 탄 버스에는 덜컹떨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 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 주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 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 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